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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05:45

2019년 9월 28일 사는 이야기

1997년 겨울로 기억한다. 당시 친하게 지냈던 대학교 동기 용준이가 명동에서 구세군 자원봉사를 해서 그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그때의 명동은 지금처럼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아서 혼자 산책하며 구경하고 포장마차에서 오징어 다리 하나 사서 먹을 여유가 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대학교에서 삼품제라고 IT, 영어, 봉사를 강제했었다. 나 역시 명동에 있는 서울 YWCA 봉사 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혼자 명동 거리를 서성이며 구세군 봉사활동을 마치는 용준이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이고 풍선을 나눠주고 커다란 트럭이 명동 거리로 들어오더니 대통령 후보 연설회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혼자서 할일도 없고 자리잡고 앉아서 어떤 행사인지 구경했다. 20년전이라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돌아가신 고 김대중 대통령의 후보 연설이었고, 꽤 진지하게 경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 나 후보 연설봤다고 자랑을 했고, 그친구는 자기가 종치던 구세군 냄비에 정치인들이 왔다갔다고 얘기해주었다. 당시에도 내가 알고 있던 정치인 고등학교때 친구 몇몇과 즐겨봤던 한겨레21에 많이 언급되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자기 구세군 냄비에 만원짜리를 넣어주었다고... 다른 정치인들은 그냥 지나치는데 그분만 수고한다며 지갑에서 만원 꺼내서 넣어주었다고 용준이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아마 내 평생 잊지 못할 친구와의 대화로 기억될 것이다.

'아, 나도 그 아저씨는 직접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


그리고 첫 직장에서 정신없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던 2004년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지고, 시간이 되는 한에서 열심히 광화문을 다니며 탄핵반대 운동을 했었다. 그때 사진이 하드디스크를 뒤져보면 나올텐데... 아 여깄다.

- 2004년 3월 20일 저녁 8시 -
정권이 바뀌고 MB정권은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확대했다. 언론에서도 미국산 소고기위 위험성과 협상의 불합리성을 설파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역시 나도 그 곳에서 초 하나를 들었다.

- 2008년 9월 15일 저녁 9시 -
극악무도한 MB정권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의 국민장이 열리는 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추모를 하는 등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겪어야할 시대의 아픔이 나에게 고스란히 넘어왔다. 7,80년대가 격동의 민주화 운동의 시기였고, 그 성공으로 총성과 대선으로 이루어지는 직접 선거로 민주화된 나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세대인 우리가 해야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던 것이다. 그 의무가 20, 30대 나에게 전해졌기에 최소한의 의무만을 수행했다.

이제 40대가 되어 네살난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이제 설문조사에서 젊은이의 노년층 사이에 낀 세대가 되었지만, 마음은 역시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기대하는 이유는 나 아주 평범한 사람이고,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고, 이런 상식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세상은 과거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믿음 때문이다. 좀더 많은 권력이 국민에게 돌아오고, 민주화에 대한 성공 체험과 촛불집회의 평화 시위에 대한 체험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며칠전에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우산혁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회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데, 14살에 학민사조라는 단체를 만들어 중국정부의 통일화된 국민교육을 거부했던 조슈아 월의 활동과 삶이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평범한 중학생이었던 그가 왜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수많은 홍콩시민들이 함께 나서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고, 한편으론 사는데 바쁘다고 세계정세에 어두웠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이제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니...

요즘 우리나라가 매우 시끄러운데, 대충 생각해도 별일 아닌 일들을 침소봉대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 생각한다. 검찰이야 개혁대상이기에 살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데, 언론이 국민감정을 외면하고 검찰의 나팔수 역할을 하니 어찌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기사 제목만 봐도 짜증이 밀려오니 광장에서 그 화를 좀 풀어야하지 않을까.

아내와 농담으로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정치하면 큰일나겠다'라는 말을 한다. 우리집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랴.

내가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딸이 나중에 커서 사회운동을 하고 정치를 해야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는데, 좀더 자유로운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라도 이번의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들 대부분이 정치에 뜻을 두고 시작한게 아니라 사명감으로 정치에 발을 디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치는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  

오늘은 다른 일정으로 광장에 나가지 못했지만, 다음주에는 네살 해민이에게 광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2019년 가을, 우리나라 역사의 한페이지가 쓰여졌다.


- 2019년 9월 28일 저녁 (퍼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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