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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 00:06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 사는 이야기

우리 아버지는 40년생이시니까 살아 계셨다면 우리 나이로 79세가 되셨을거다.

세살날 우리 딸 해민이를 키우면서 지금의 내 모습에 내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을 겹쳐 보곤 한다.
우리 아빠가 마흔 두살일 때면 그 해는 1981년이었을테고, 1977년생인 내 나이는 다섯살 시절이다.

다섯살의 기억은 없지만 국민학교 입학 전, 그러니까 그전해와 전전해.. 여섯살때부터는 동네 친구들과 매일 집앞 골목에서 뛰어 놀다가 저녁 무렵 아빠가 퇴근하길 기다리며 집 옥상에 한살 터울 작은 누나랑 앉아서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그당시 우리 아버지는 배불뚝이여서 작은 누나랑 나는 아빠 배를 주먹으로 통통 치면서 장난치곤 했다.
그리고 내 키는 아빠 배꼽 정도였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좁게 느껴지던 수원집이 그때는 엄청나게 넓은 (옛날 집이여서 방은 지금도 많다.) 나의 놀이터였다.

한없이 크게 느껴졌던 우리 아빠.

우리 딸 해민이와 장난칠때마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아빠의 기억이 또렷해지고, 더 보고싶은 생각이 든다. 벌써 돌아가신지가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몇몇 기억은 선명하다. 수원집 안방에 걸려있는 가족사진, 내가 대학교 입학하던 1996년에 수원에서 서울시청까지 온가족이 버스타고 가서 사진찍은 가족사진. 그 사진속 아빠는 편찮으시기 전이어서 건강했고, 내 어릴적 아빠의 모습 그대로 미소를 짓고 계신다.

 
30대때는 내가 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작 몇년 안지난 40대 초반임에도 인생의 반이 지났다는 허무함이 짙어진다. 
회사 일에 육아에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안읽고, 사색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소중한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슬프다.

내 아빠가 내 나이때 가족들에게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아빠였지만, 고스톱을 좋아해 외박을 종종 하셔서 엄마가 힘들었는데, 화투를 손에 쥐고 있는 순간, 오롯이 그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나마 저렴한 취미였다고 생각한다. 직장 동료분들이랑 같이 화투를 치셨으니 아마 큰 돈이 오가는 도박판은 아니었을거다. 화투 핑계로 그냥 모여서 놀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아빠의 화투로 우리집이 크게 기울거나 그러진 않았으니... (물론 엄마의 다부진 노력으로 우리집의 기둥이 지켜졌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으로 사는 것,
한 남편으로 사는 것,
한 아빠로 사는 것,
그리고 지금 회사에 컴퓨터에서 이 글을 쓰니... 한 회사원으로 사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해나가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활짝 웃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활짝 웃는 연습도 많이 해야지.

오랜만에 글을 쓰니 생각이 막 밀려오는데 종종 생각을 정리할 때 이렇게 글을 남겨야겠다.

이제 남은 일을 계속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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