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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8 17:51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짧은 감상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THE SENSE OF AN ENDING, 이 책의 제목이다. 
머리 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의해 내가 행동을 했을 때, 잠시 후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어떤 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촉'이라고 해야할까. 부정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긍정의 기운이 느껴질 때는 마음껏 받아들이고 만끽하는 느낌이 있다. 많은 경우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어떠한 행동을 하는데 있어 지금의 상황에 최선의 판단을 내릴 때보다는, 앞으로 있을 미래의 희망사항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자에 비해 남자가 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이 소설은 감정에 따른 행동과, 그 행동에 따른 결과,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감정의 변화를 1인칭 시점을 통해 담담히 그려낸 소설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을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고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며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학창시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코 그때가 그립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 학교였기 때문에,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제는 일화가 된 몇몇 사건과, 시간이 변모해가면서 확신으로 굳어진 덕분에 꽤 사실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게 된 몇몇 기억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실제 사건들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질 순 없어도, 최소한 그런 일들이 남긴 인상에 대해서만은 정직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고등학생 시절의 화자 토니 웹스터와 세명의 친구, 특히 철학적이고 명석했던 에이드리언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의 1부가 진행된다. 이들의 대화는 반항기가 다분한 사춘기의 거친 단어로 이루어진다. 그래 사춘기 때는 누구나 다 그렇지. 옛 시절이 떠오른다.


생이 저물어가는 무렵이 되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안 그런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덕을 쌓은 만큼 상을 주는 게 인생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 젊었을 때는 노년에 겪을지 모를 고통과 황폐를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인, 이혼을 한, 상처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자신들도 커서 품을 떠나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입지가 사라지고 욕망이, 이성을 끄는 매력이 사라지는 것을 상상해본다. 더 나아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 세상 어떤 동반자를 구한다 해도 홀로 맞설 수밖에 없는 죽음까지도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앞을 내다보는 행위 일 뿐이다.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부단히 기록-말로, 소리로, 사진으로-을 남겨두었다 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냐?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노년이 되었다. 이혼을 했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전 부인이 있고, 딸 수지가 있고, 손주가 있다. 책을 읽고,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보낸다. 지나고나면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던 화자 토니 웹스터에게 어느날 특별한 연락이 온다. '과거 대학생 때 사귀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500파운드를 수령하라고'.

뒤늦게 사건이 시작된다. 잊혀지는 듯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옛 연인 베로니카와 청년시절 무리를 지어다녔던 세 친구들, 그 중에서도 철학적이고 명석했던 친구 에이드리언.

시간이 지나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 몸에 일부인 머리(두뇌)는 내가 남기고자 것만을 기억하는 이기적인 성질의 것이어서, 실제 사건과 사뭇 다른 인상으로 남겨진다. 토니 웹스터의 머릿 속에 깊이 파묻혀있던 수십년전의 기억들. 노년의 남자와 함께 사유하며 비슷하지도 모를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 본다.

초반에는 일반적인 외국 번역 소설처럼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문장의 호흡에 적응하고 화자의 모습이 구체화 되면서 책읽기는 어느새 가속도가 붙는다. 곧 마지막 장을 덮는다. 읽는 동안 한 남자가 내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떠나간다.

아내가 먼저 읽고 권해준 책이다. 이 책을 주제삼아 서로의 감상을 나누어야겠다.


"그 시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닭장 같은 데 갇혀 있는 신세라고 생각했고, 그곳을 벗어나 우리의 인생으로 풀려날 날을 기다렸다. 그 순간이 오면, 우리 인생-과 시간 자체-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상황을 막론하고 이미 시작돼버렸음을, 그래서 이미 얼마간 득을 봤고, 또 얼마간 손해를 감수했음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 우리가 닭장에서 풀려난다 한들, 처음엔 그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더 큰 다른 닭장으로 결국 들어가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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